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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80301032912048001

 

[문화] 박경일기자의 여행 게재 일자 : 2016년 08월 03일(水)
 
겸재 정선도 ‘홀딱’… 진경산수화가 된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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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폭포가 쏟아지는 경북 포항의 내연산 청하골 계곡의 암봉 선일대에서 내려다본 관음폭포 일대의 경관. 진경산수와의 대가 겸재 정선은 이곳에서 벼슬을 하면서 내연산의 산수를 4점의 그림으로 남겼다. 그중 가장 빼어나다고 평가되는 그림 ‘내연산 삼용추’는 이곳 관음폭포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선일대 암봉 위에 포항시가 최근 진경산수 발원지사업으로 정자를 세웠다.
 

포항 내연산 & 영덕 관어대 

시뻘건 장작불 위의 가마솥 같은, 혹은 달궈진 양철지붕 같은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습식 사우나에서 뿜어대는 수증기 속에 가둬져 있습니다. 여름휴가의 절정에 경북 동해안을 따라 포항 북부에서 영덕, 울진으로 길을 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이끈 건 푸른 바다가 아니라,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선비의 풍류였습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250여 년 전쯤 포항의 청하 현감으로 부임해 화첩에 남긴 산수 간의 명소를 두루 찾아보기로 했던 것이지요. 차가운 물을 뒤집어써서 더위를 잊는 여행 말고 모시옷의 느린 걸음과 쥘부채로 운치 있게 여름을 나는, 그런 풍류를 생각하고 떠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뜨거운 절정의 더위에 쥘부채 하나로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 남긴 내연산의 서늘한 열두 폭포는 습하고 뜨거운 대기 속에서 후끈거렸고, 포항의 청하면 일대 고래불의 바다를 굽어보는 용산의 숲길에서도 쏟아지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36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뜨거운 진공의 공간처럼 바람 한 점 없던 울진의 정자 관어대를 오르는 고행은 또 어땠고요…. 모시옷 차림의 느린 걸음으로 더위를 물리치겠다는 건 그저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만난 진경산수의 풍경은 빼어났습니다. 눈 밝은 대가가 화폭으로 옮겨놓은 풍경이니 그럴 수밖에요. 굽이굽이 물길이 폭포로 이어지는 내연산의 계곡도 그랬고, 먼 바다로 항해하듯 산정에서 울진의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정자도 훌륭했습니다. 겸재 정선이 그려낸 그림으로 길을 잡았던 탓인지, 그림 속의 여백의 풍경에도 눈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늘에 앉아서 천천히 시간을 헤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쥘부채 하나 들고 걸음을 한껏 늦추는 풍류의 여행은, 온 세상이 양철지붕처럼 달궈진 이즈음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이 여행을 떠나야 할 시기를 ‘지금’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가 좀 가신 다음’으로 고쳐 적습니다. 바람끝이 좀 서늘해진 뒤라면 나무랄 데 없을 듯합니다. 
 
▲  겸재 정선이 현감으로 있었던 청하현은 지금의 포항시 청하면이다. 청하면 미남리의 월포해변 뒤쪽으로 솟은 용산의 작은 솥바위에 오르면 월포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록에는 없지만, 청하현에서 바다를 보는 가장 빼어난 자리인 이곳을 겸재가 다녀가지 않았을 리 없겠다.
 

#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풍경 속으로… 

여기 힘찬 폭포를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 한 장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그의 그림 ‘내연산 삼용추’는 진경산수 화법의 완성을 선언하는 그림이다. 그 그림 속의 경관이 포항 북쪽 해안에 가까운 내연산에 있다. 내연산은 계곡의 기암과 열두 개의 폭포로 이름난 곳이다. 영남지방의 마른장마로 수량이 많이 줄었다지만, 폭포는 저마다 다른 형상과 소리로 힘차게 쏟아졌다. 

계곡에는 폭포뿐만 아니다. 점입가경. 계곡으로 깊이 들어서자 폭포 위로 까마득한 바위벼랑이 죽순처럼 솟아있다. 선일대, 비하대, 학소대, 어룡대…. 깎아지른 바위들이 저마다 자못 풍류 넘치는 이름을 달고 있다. 신선이 노닐고, 학이 둥지를 틀고, 용이 솟구친다는 바위들이다. 

겸재 정선이 여기 내연산을 찾았던 건, 지금으로부터 280여 년 전의 일이다. 겸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던 영조는 그의 나이 쉰여덟이 되던 해에 경상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청하현의 현감으로 발령을 냈다. 청하현은 지금의 포항시 청하면이고, 현감이란 지금의 군수쯤의 벼슬이었다. 모르긴 해도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소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던 겸재에 대한 영조의 배려로 내린 벼슬이었을 것이었다.

겸재는 청하 현감을 지냈던 2년 남짓의 시기에 조선 화단에 큰 획을 긋는 그림을 쏟아냈다. 문경 이남의 명승 쉰여덟 곳을 그림으로 옮긴 ‘교남 명승첩’이 그때의 작품이다. 내연산으로의 여정을 위해 들고 나선 두 장의 그림 ‘내연산 삼용추’와 ‘청하 내연산폭포’도 교남 명승첩에 실려 있는 그림이다. 

‘내연산 삼용추’의 그림 속으로 옮겨진 폭포는 내연산의 열두 폭포 가운데 잠룡폭포와 관음폭포, 연산폭포다. 그림 속에는 지금은 흐트러지고만 암자와 사다리, 그리고 수직으로 쏟아지는 폭포 아래는 도포 입고 갓을 쓴 선비들이 탐승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을 흉내 내며 옛 선비들이 디뎠을 계곡을 끼고 물소리를 따라 걷는다.  

내연산의 폭포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단연 연산폭포와 관음폭포 일대다. 계곡의 들머리인 보경사에서 2.5㎞ 남짓. 길이 워낙 유순해서 관음폭포까지는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관음폭포 위로도 은폭포, 시명폭포, 복호폭포가 있지만 경관의 중심은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일대다. 사방이 깎아지른 벼랑으로 가둬진 관음폭포는 쏟아지는 물길이 깎아낸 독특한 형상의 바위들로 눈길을 붙잡는다. 거센 폭포의 물줄기가 바위를 해골의 형상으로 깎아내기도 했고, 동굴 속에서나 보던 석주를 세워놓기도 했다. 기암의 절경을 두른 폭포 아래 맑은 소에 담긴 물색이 비현실적인 푸른 빛이다.
 
▲  생동감 넘치는 힘찬 붓질과 채색법으로 그려낸 그림 ‘내연산 삼용추’. 겸재 정선이 쉰여덟이 되던 1733년 포항 청하현의 현감으로 부임한 첫해에 그린 이 그림은 ‘진경산수화의 완성’으로 평가된다.
 

# 진경(眞景)…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내연산을 찾은 이들은 거개가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만 보고 돌아가지만, 이 두 폭포의 경관을 가장 아름답게 내려다보는 자리가 바로 위쪽의 선일대다. 신선이 비하대에 내려와 폭포를 완성한 뒤 올라가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바위다. 기암으로 힘차게 솟은 바위를 끼고 오르는 길에는 나무덱이 놓여있고 298m의 바위 정상에는 팔각정자가 지어져 있다. 포항시가 진경산수 발원지 조성사업의 하나로 겸재 정선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연말에 세운 것이다.  

왜 하필 진경산수 발원지로 선일대를 택했던 것일까. 겸재가 여기서 폭포를 그려서 그랬을까, 그의 그림 속에 선일대가 등장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정자를 짓기 좋은 자리라 그랬을까. 필시 그곳을 진경산수의 발원지로 삼은 이유가 있을 텐데도, 정자를 짓는 사업을 담당했다는 포항시청의 공무원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선일대의 정자에 올라 굽어보면 겸재 그림 속의 진경산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겸재가 추구했던 ‘진경산수’란 다만 붓끝의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진경’이란 곧 ‘우리 자연’을 ‘우리 생각’으로 그려냈음을 뜻한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그의 붓으로 이뤄낸 것이지만, 동시에 당시 조선 사회가 거둔 성취였다. 

먼저 겸재가 살았던 시대를 보자. 임진왜란에 이은 병자호란으로 국토를 유린당한 조선은 전란 후 혼란 상황 수습과 자존심 회복이 절실했다. 오랑캐 청나라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던 치욕과 좌절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했다. 극복의 방법은 청나라의 야만성을 부각하고, 우리의 문화적 우월감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조선이야말로 예의를 숭상하고 인륜을 지키는 문화국가의 중심이라는 자부심. 당대의 지성들은 그 핵심에 자연 친화적이며, 검소와 질박한 삶을 추구하는 선비 정신을 기치로 세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의 화풍에서 벗어나 우리의 자연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붓끝으로 그려내는 진경산수가 탄생했던 것이다. 진경산수화로 비로소 조선은 ‘우리 자신’의 그림을 그려내게 됐다. 그림이 달라졌다는 건, 곧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경산수는 그림의 기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뀐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과 정신. 사물을 보는 시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그 그림 속에 있다. 그렇게 정리해 보면 겸재의 그림도, 선일대에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다시 보인다. 


# 겸재도 올랐을까…용산 작은 솥바위 

청하 현감을 2년 남짓 지냈다지만, 내연산의 폭포를 그린 몇 장의 그림 외에는 포항에 겸재 정선의 뚜렷한 자취는 없다. 추정으로나마 그의 자취를 짚어볼 만한 곳을 꼽자면, 청하면 미남리의 월포해수욕장의 바다에 바짝 붙어 솟은 용산(190m)을 들 수 있겠다. 월포해수욕장 포스코수련관 주차장에서 용산으로 오르는 오름길의 이름이 ‘겸재 정선 길’이다. 겸재의 이름을 빌려 길의 이름을 붙였지만, 겸재가 이곳을 다녀간 기록은 없다.  

겸재는 자신이 다스리던 청하읍성 일대를 그림 ‘청하읍성도’로 담았으되 바닷가 그림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용산의 어깨쯤에 있는 작은 솥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월포바다와 해변의 경관의 빼어남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현감으로 다스리던 지역의 이런 경관을 눈 밝은 겸재가 놓쳤을 리는 없었을 것이었다.  

36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용산에 오르자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금세 땀으로 적셔졌다. 하지만 솥바위 위에 올라서자 발아래로 펼쳐지는 바다의 경관에 탄성이 터졌다. 연무가 시야를 가리는 날이었음에도 푸른 바다와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의 경관은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이 정도의 높이로 이런 경관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물러서 솥바위 너머로 바다를 보는 풍경이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바다뿐만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청하면 일대의 논과 마을의 경관도 못지않았다. 바다 안쪽으로 너른 논들이 뿜어내는 초록으로 눈이 시렸다. 바다에서 물러서 군데군데 방풍림을 두르고 있는 집들도 단정했다. 멀리서 물러서 내려다본 마을들은 푸근하고 따스했다. 겸재가 현감을 지낼 때 이곳을 찾았다면, 그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았을까.  
 
 

# 만물과 내가 한마음 되는 곳…관어대  

포항 북부 내연산에서 시작한 여정이, 동해안을 따라 영덕까지 올라가 영해 괴시리의 상대산(183m)으로 이어졌다. 상대산에는 관어대가 있다. ‘볼관(觀)’자에 ‘물고기어(魚)’자를 쓴다. 본래 관어대는 아니라 상대산의 서쪽 절벽을 부르는 이름인데, 고려말의 학자이자 문신인 목은 이색이 ‘바다에서 노는 고기를 볼 수 있는 곳’이란 의미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겸재 정선은 청하 현감 시절에 관어대를 찾아 그 경관을 그림으로 남겼다. 겸재 이전에도 조선 초의 성리학자 김종직과 고려말 조선 초의 문인인 원천석이 ‘관어대’란 제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상대산은 바깥에서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만그만한 산이다. 하지만 산에 올라보면 느낌이 다르다. 앞서 오른 포항의 용산처럼 바다를 바짝 끼고 솟아있고, 높이도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신우대가 터널처럼 하늘을 가린 길도 있고, 곰솔들이 그늘을 드리운 부드러운 솔숲길도 깊다. 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대진항으로 이어지는 마을 길의 대진 장로교회 앞에서 시작되는데, 몇 걸음 만에 깊은 산중에 와있는 것처럼 숲이 깊어졌다. 산정으로 향하는 길도 제법 길고 가팔라서 숨이 가쁘다. 

정상에는 작년에 지어진 정자가 ‘관어대’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새로 지은 정자는 크고 당당하다. 관어대에 오르면 발아래로 대진해변과 고래불해변의 압도적인 경관이 펼쳐진다. 멀리 칠보산의 짙은 녹음과 후포 일대 초록의 논들은 초록 잉크를 쏟은 듯 바다로 밀려 내려왔다.

관어대 정자 안에 걸어놓은 ‘관어대기(記)’를 읽는다. 목은 이색이 관어대 아래를 굽어보며 놀고 있는 고기떼를 보며 남긴 시가 관어대기에 있다. “굽어보니 온갖 고기들/같은 놈 서로 다른 놈/어릿어릿한 놈, 천천히 꼬리치는 놈/제각기 그 뜻대로 놀고 있다네.” 이 시 뒤에는 ‘천성을 따름이 하늘을 따름이라면 만물과 내가 한마음이 되는 것, 그것이 최고의 경지이니 관어대야 말로 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절경임을 설파한 것’이라는 관어대기를 쓴 이의 해설이 따라붙었다. 풀어보자면 곧 자연 속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근원적으로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 모두는 한 인연으로 엮어있음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그 뜻을 되짚어 읽으며 겸재가 그림으로 구현해낸 진경산수를 읽는다.  

포항·영덕·울진=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 홈지기 2016.08.04 09:32

    고향의 산천이 그립다.

    보경사 계곡으로 올라 저 곳을 지나면 은폭이 나오고 한참을 올라가면 지금은 없어진 시명리가 나오면 그곳에서

    향로봉으로 오른다.

    지금은 정상부근이 모두 숲으로 되어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시절에는 정상 부근이 억새로 덮여 있어 동해를 바라보는 풍경이 멋졌었는데....

    지금은 정상에서도 주변을 보기가 어렵다.

    향로봉(930미터) 정상에서 경북수목원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행을 한다면 하루 종일 코스가 된다.

    관음폭포를 지나 은폭이 있는 곳에서 왼쪽 능선으로 오르면 우척봉을 오르는데 이 곳에서는 동해를 환히 바라볼 수 있다.

    이 우척봉을 통해서도 경북수목원으로도 갈 수 있다.

    자주 가던 계곡이었는데 가 본지도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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